예술과 존재: 예술은 존재를 어떻게 드러내는가?에 대해 소개합니다.
1. 존재란 무엇인가: 드러남으로서의 존재
존재를 논하는 것은 인간 사고의 가장 오래된 시도 중 하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파르메니데스는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단순하고 명쾌해 보이지만, 이 말은 존재를 다루는 일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암시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있다"고 말할 때, 단순히 그것이 물리적으로 존재하는지를 넘어서, 그 존재가 어떻게 우리에게 드러나고, 인식되는가를 묻는다.
현대 철학자 하이데거는 존재를 ‘있음’(Sein)으로 이해하는 대신, ‘드러남’(Unverborgenheit), 곧 숨겨지지 않음의 사건으로 보았다.
존재는 본질적으로 드러나는 사건이며, 존재자가 존재하는 것은 단순히 거기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존재는 결코 완전히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펼쳐지고 드러나는 과정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존재를 드러낸다는 것은 단순히 사물을 복제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존재는 드러나는 방식을 통해 세계 안에서 자신을 펼친다.
그리고 이 드러남의 가장 본질적이고 강력한 방식 중 하나가 바로 예술이다. 예술은 사물과 세계의 깊은 층위를 열어젖히며, 일상적 인식 너머의 존재를 우리 앞에 가져온다.
2. 예술은 존재를 어떻게 드러내는가
예술은 단순한 표현이나 재현(representation)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세계를 새롭게 열어 보이는 '개시'(disclosure)의 행위에 가깝다.
하이데거는 "예술 작품은 진리의 사건"이라고 말한다.
예술은 진리, 곧 존재의 어떤 모습을 세상에 드러나게 한다.
이는 단순히 사물의 외관을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본래 갖고 있는 본질을,
혹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놓치고 있는 깊은 차원을 열어젖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흐의 《구두》를 생각해보자.
이 작품에서 고흐는 단순히 낡은 구두 한 켤레를 그린 것이 아니다.
그는 그 구두를 신었던 사람의 삶, 땅과 고통, 노동과 피로의 무게를 캔버스 위에 드러낸다.
관객은 그저 구두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경험, 고단한 생존의 현장을 본다.
이처럼 예술은 일상적으로 감춰진 존재의 층위를 환기시키고, 보는 이로 하여금 존재를 새롭게 경험하게 한다.
또한, 예술은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을 언어 너머로 전달한다.
시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그 단어들은 일상 언어처럼 의미를 고정하지 않고, 오히려 열어젖힌다.
음악은 명확한 개념 없이 감정과 존재의 흐름을 직접 드러낸다. 추상미술은 사물의 구체적 형상을 넘어, 존재의 리듬과 기운을 나타낸다. 이러한 모든 예술 행위는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다양한 방식이다.
결국 예술은 존재를 단순히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도록 돕는 장(場)이 된다.
예술가는 존재가 드러날 수 있도록 세계를 열고, 관객은 그 열린 세계 속으로 들어가 존재를 새롭게 경험한다.
3. 존재를 새롭게 창조하는 예술
예술은 존재를 드러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때로는 존재를 새롭게 창조한다.
예술은 기존의 세계를 단순히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힌다.
이는 단순한 허구나 환상이 아니다.
인간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존재 자체가 유동적이며, 아직 드러나지 않은 가능성들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20세기 초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기존의 미적 규범과 세계 이해를 파괴함으로써, 존재를 새로운 차원에서 드러냈다.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은 '그림'이라는 전통적 개념을 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무"를 응시하게 했다. 마르셀 뒤샹은 일상의 오브제를 '레디메이드'로 제시함으로써, 존재하는 사물의 의미를 새롭게 구성했다.
이처럼 예술은 존재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세계 인식을 흔든다.
현대에 이르러 디지털 예술, 인공지능 예술 등은 더욱 급진적으로 존재의 경계를 밀어붙인다.
가상현실 속 존재, 디지털 데이터로 구성된 존재는 물리적 실재에만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존재 방식을 제안한다.
이때 예술은 단순히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 자체를 질문한다.
우리는 무엇을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현실과 가상,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 예술은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재사유를 요구한다.
이처럼 예술은 존재를 드러낼 뿐 아니라, 존재를 재구성하고 창조하는 힘을 가진다.
인간은 예술을 통해 존재를 인식하고, 체험하고, 새롭게 창출해나간다.
예술은 존재의 거울이자, 존재의 가능성의 무대이며, 존재 그 자체가 끊임없이 자신을 열어 보이는 과정이다.
예술과 존재와 관련된 사례
- 요제프 보이스, 《나는 미국을 사랑한다, 미국도 나를 사랑한다》(1974)
사례 설명:
보이스는 뉴욕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고, 구급차를 타고 갤러리로 직행한다.
그곳에서 코요테 한 마리와 며칠 동안 함께 갇혀 생활하는 퍼포먼스를 벌인다.
존재 드러내기 관점:
코요테는 미국 원주민 문화에서는 신성한 존재였지만, 현대 미국에서는 해로운 동물로 여겨졌다.
보이스는 코요테와의 대화를 통해, '미국'이라는 존재의 양면성, 문명과 자연, 인간과 동물 사이의 존재적 긴장을 드러낸다.
→ 존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계속 변하며 드러난다는 점을 퍼포먼스 자체로 보여준 사례.
- 아이 웨이웨이, 《씨앗》(Sunflower Seeds, 2010)
사례 설명:
아이 웨이웨이는 1억 개가 넘는 해바라기씨 모형을 모두 손으로 빚고,
이를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터빈홀에 깔아 놓았다.
처음엔 관객들이 그 위를 자유롭게 걸을 수 있었지만, 건강 문제로 이후에는 단순히 바라보기만 가능하게 조정되었다.
존재 드러내기 관점:
멀리서 보면 그것은 하나의 '풍경'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각각이 손수 만들어진 독립된 존재이다.
이 작품은 '개개인의 존재'와 '집단적 존재' 사이의 긴장, 개인이 어떻게 거대한 체계 속에 묻혀가는지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 존재의 개별성과 집합성,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가치를 부각시키는 사례.
- 올라퍼 엘리아슨, 《The Weather Project》(2003)
사례 설명:
덴마크-아이슬란드 출신 아티스트 올라퍼 엘리아슨은 런던 테이트 모던의 터빈홀 천장에 거대한 가짜 태양을 설치했다.
관객들은 황금빛 안개 속에서 인공 태양을 바라보거나, 바닥에 드러누워 자신의 그림자를 하늘에 비춰보기도 했다
존재 드러내기 관점:
엘리아슨은 실제 "태양"이 아니라, 조명과 안개를 사용해 감각적으로 태양을 "경험하게" 만들었다.
이 작품은 관객의 감각, 몸, 주변 환경이 모두 합쳐져 존재 경험을 새롭게 구성하게 했다.
태양이라는 존재를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으로 변환시키면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자연, 공간, 심지어 자신의 존재감을 다르게 인식하게 했다.
→ 존재는 외부에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 감각과 관계 속에서 매순간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걸 체험시키는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