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해 소개합니다.
1. 예술, 존재의 이유를 묻다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 물음은 인간이 예술을 만들기 시작한 순간부터 함께 따라붙었다.
동굴 벽화에 남은 원시인의 손자국, 고대 신전의 부조, 중세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오늘날 디지털 화면 위의 픽셀 아트까지 — 예술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인간 곁에 있었다. 그
러나 예술이 단지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기에는 그 역할이 너무나도 복잡하고 깊다.
예술은 인간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 즉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 세계를 바라보는 고유한 시선, 존재의 경이와 고통을 드러내려는 충동이 예술을 낳는다.
플라톤은 예술을 모방(mimesis)으로 보았지만, 단순한 현실 재현을 넘어 예술은 내면의 진실, 세계 너머의 의미를 탐구하는 수단이었다.
인간은 세계를 단순히 살아가는 것을 넘어, '의미화'하고 '형상화'하려는 존재다.
예술은 이 의미화의 본능이 구체적인 형태를 얻은 것이다.
따라서 예술은 특정 목적을 넘어선다.
돈을 벌기 위해서도,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서도, 심지어 관객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도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 자체의 외침, 인간이 이 세계에 대해 "나는 여기 있다"고 말하는 가장 근원적인 방식 중 하나다.
2. 예술은 사회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러나 예술은 개인적 충동을 넘어서 사회적 기능도 수행해왔다.
예술은 시대의 가치를 반영하고,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며, 공동체의 기억을 보존한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은 공동체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했고, 르네상스 미술은 인간 이성과 신성의 조화를 꿈꾸었다.
현대에 들어서 예술은 종종 사회를 비판하고, 억압에 맞서고, 억눌린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맡았다.
특히 20세기 이후, 예술은 점점 더 적극적으로 사회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프란츠 파농은 예술을 식민지 해방 운동의 도구로 보았고,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관객을 각성시키는 '서사극'을 통해 현실 변화를 꿈꿨다.
오늘날에도 페미니즘, 환경운동, 인권운동 등 다양한 사회 운동 속에서 예술은 중요한 무기가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예술은 단지 개인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공동체를 치유하거나 변화시키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예술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목소리이자, 기존 질서에 균열을 내는 도구다.
이는 예술이 '쓸모없음'을 자처하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효용성'을 가지게 되는 역설을 낳는다.
예술은 결국, 공동체적 인간 존재를 반영하고 확장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3. 예술은 자유를 위해 존재하는가?
끝으로, 예술이 존재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자유'다.
예술은 규범, 질서, 통념에 도전하며, 그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한다.
예술은 늘 무언가를 부수고, 재구성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왔다.
혁신적인 예술은 기존 체계를 넘어서는 '다른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이 상상은 인간이 더 넓은 자유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예술의 '목적 없는 목적성'을 말하며, 예술은 어떤 외적 목적(예: 도덕, 정치, 경제)에도 종속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정한 예술은 어떤 대가를 바라거나, 어떤 결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완결적이고 자율적인 세계를 펼쳐낸다. 이 자유로움은 인간 정신의 가장 숭고한 상태를 보여준다.
오늘날에도 예술은 자본주의의 압박, 정치적 검열, 사회적 규범 등 다양한 억압에 맞서면서 스스로의 자유를 지키려 한다.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타협하지만, 예술은 여전히 자유를 향한 인간의 꿈을 가장 강렬하게 증언하는 매체다.
결국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 그것은 인간 존재 자체를 증명하고, 사회를 성찰하며, 자유를 갈망하기 위해서다.
예술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느끼고, 바꾸려는 모든 욕망의 총체적 표현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예술은 어떤 시대에도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며, 사라지지 않는다.
예술의 존재 의미와 관련된 사례
- 마르셀 뒤샹의 '샘'(Fountain, 1917)
"예술은 무엇인가?"를 정면으로 묻다
뒤샹은 평범한 소변기에 'R. Mutt'라는 가짜 서명을 하고, 그것을 전시회에 출품한다.
작품명은 《샘》이라 했다.
당연히 심사위원들은 이를 거부했지만,
이 사건은 "예술은 물질이 아니라 관념이다"라는 혁명적인 선언 된다.
뒤샹은 예술이 기능이나 아름다움에 종속되지 않는다고 외치며, 이후 현대미술은 '무엇이 예술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본격적으로 던지기 시작한다.
➔ 이 사례는 "예술은 목적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기 위해 존재할 수 있다"고 보여준다.
- 반 고흐의 생전 무명 (살아서는 외면당한 예술)
"예술은 성공이나 인정과 무관하게 존재할 수 있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생전에는 거의 그림이 팔리지 않았다.
그는 '미치광이 화가', '쓸모없는 방랑자'로 취급받으며 가난과 고독 속에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사후, 그의 작품은 전 세계가 사랑하는 걸작이 되었고, 그는 현대 예술의 상징이 되었다.
고흐의 삶은 예술이 단순히 시장이나 사회적 인정에 의해 의미를 얻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 이 사례는 "예술은 생존이나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표현 자체를 위해 존재할 수 있다"고 알려준다.
- 뱅크시(Banksy)의 'Girl with Balloon' 파괴 사건 (2018)
"예술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행위'가 될 수 있다"
뱅크시는 자신의 유명 작품 《풍선을 든 소녀》가 경매에서 약 15억 원에 낙찰되자마자,
액자에 숨겨둔 분쇄 장치를 작동시켜 작품을 절반쯤 잘라버린다.
관객들은 충격을 받았고, 세계는 이 퍼포먼스를 두고 논쟁을 벌인다.
이 퍼포먼스로 "예술은 소유될 수 있는가?", "가치를 파괴하는 행위도 예술인가?" 같은 질문이 터져나온다.
➔ 이 사례는 "예술은 물질이 아니라 순간, 반응, 충돌을 통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준다.